1983년이나 그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 하늘을 볼 일이 더 많았다. 현재를 기준으로 말하면, 인터넷도 없고 온라인 게임도 없고 케이블 TV도 없는, 바깥에서 동네 애들과 노는 것 외에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탓이었겠지만…… 어쨌거나 심심찮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보다 원시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설탕도 프림도 없는 탓에 시커멓고 더럽게 쓰기만 한 커피를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으로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커피 따위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고 아버지가 줄기차게 막았던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그걸 사들고 미드 주인공처럼 거리를 걸어 다니는 지금까지 ‘블랙커피’라는 아날로그적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다방에서 쌍화차에 계란 띄우는 그런 ...
1 오늘은 월급날이다. 보험금 빠지고, 학자금 빠지고, 폰 요금에 이것저것 빠지고 나면 볼 것도 없는 계좌지만, 그래서 별 감흥도 없는 월급날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바로 그 볼 것도 없는 잔금을 무려 1년이나 모아 필요한 액수를 마련한 날인 것이다. 오늘을 위해 미리 반차도 신청해놓았다. 직장의 사람들이 모두 신나게 웃어댔다. 그 악독한 부장도 흔쾌히 허...
1 너는 돌멩이를 걷어찬다. 딱히 생각하고 한 짓은 아니다. 몸에 밴 행동도 아니고, 어떠한 이득을 노린 것도 아니다. 너는 그저 피곤할 뿐이다. 지쳤을 뿐이고 짜증이 났을 뿐이다. 너는 오늘도 밤늦게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고 싶은 것도 아니고 택시비를 누가 주는 것도 아닌데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택시를 탄다. 직장동료들, 대체 왜 ‘동료’라는 이름이 붙...
1 예, 이제 다 자리 잡고 앉았으니 제대로 소개를 해봅시다. 나이 든 남자가 말했다. 제 이름은 김영호고 쉰둘입니다, 마산에서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동그랗게 벗겨진 남자의 머리통을 보았다. 숲에 폭탄이나 운석이 떨어지면 딱 저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사능에 오염된 사슴이 뛰어다니고 있을지도 몰라...
나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어. 그녀는 틈틈이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 헤어지지 않는 게 좋을 걸.” 잊지 않게 주기적으로 주입하는 것처럼 그랬다. 예전부터 그랬어, 타고난 거야, 나는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나와 이별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돼. 언제나 특이한 구석을 가졌고, 또 사실 본인 스스로가 특별해보이고 싶어 하던 그녀였기에, ...
1 어, 왔냐. 오래 기다린 건 아니고. 그냥 도착을 일찍 했어. 지하철이 속도를 내더라고. 요즘 지하철은 그래. 니가 지하철에 대해 뭘 알아. 요새는 그렇단 말이야. 내가 타면 빨라. 아, 오셨습니까, 하면서 기사님이 속도를 내. 뭘 따지고 앉았어. 일단 뭐라도 먹자. 식사는? 그렇지. 그래야지. 아니, 꼭 보면 술 먹기 전에 밥 먹고 오는 놈들 있거든....
나는 비스듬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째로 더운 날씨가, 둘째로 또 더운 날씨가, 셋째로 이 거지 같이 더운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등이 축축해지며 셔츠가 땀으로 물든다. 이런 날은 집구석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수박이나 퍼먹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숨쉬기도 어려운 대낮에 매미 울음소리 거창...
1 어디까지라도 가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디부터 가야할지 알 수 없었어. 2 마지막 근무를 끝냈다. 지난달 월급으로 필요한 금액을 모두 채웠기에 일을 그만뒀다. 나가기 최소 한 달 전에는 말해두는 게 일반적인 직장의 순서지만, 내가 일한 곳은 그딴 순서 따위 없었다. 원래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업무가 지독한 탓에 사람들이 워낙 쉽게 그만두다보니 ...
1 가끔 세계가 무너질 때가 있어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갈 정도로 불안해져요. 이성을 제어하기가 어렵죠. 하늘에 금이 가는 게 보여요. 처음에는 먹구름 내의 번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내 상공 자체가 쪼개지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불길한 혜성의 꼬리와 먼지들, 운석의 파편과 행성 조각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요. 저는 파묻히겠죠. 그것들은 무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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